안녕하세요. 오늘은 축제인데, 아무도 웃지 않는, 슬픔과 침묵으로 기억을 이어가는 날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축제라고 하면 보통 웃음과 환호를 떠올립니다. 음악이 울리고, 사람들은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는 그 기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축제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웃음이 어색하고, 침묵이 자연스럽습니다. 사람들은 떠들지 않고, 천천히 걷고, 고개를 숙입니다. 이 축제들은 즐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입니다. 집단의 슬픔과 역사적 상처를 공유하기 위해, 공동체는 축제라는 형식을 빌립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이 축제들은 오래 남습니다.
소리를 줄이고, 감정을 남기는 방식
일본 히로시마에서 매년 8월 6일 열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은 축제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날은 분명 매년 반복되는 집단적 행사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인다. 사이렌이 울리고, 도시 전체가 잠시 멈춘다. 박수도, 환호도 없다. 대신 고요 속에서 이름이 불리고, 종이 울린다.
이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침묵의 밀도다.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사진을 찍지 않고, 말을 아끼고,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이는 규칙으로 강제된 행동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사회적 합의다. 침묵은 무력함의 표시가 아니라, 기억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일 추모 행사 역시 비슷하다. 이 날은 축제라기보다 추모식에 가깝지만, 반복성과 집단성이라는 점에서 축제의 구조를 지닌다. 생존자와 후손, 그리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까지 한 공간에 모여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여기서 감정은 표출되지 않고, 눌러 담긴다. 그 눌림이 오히려 현장을 무겁게 만든다.

웃지 않는 축제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법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은 흔히 화려한 해골 분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이 날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특히 가족 중심의 제단이 만들어지는 공간에서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웃음은 최소화되고, 대화는 낮아진다. 제단 앞에서 사람들은 고인을 향해 말을 걸거나,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이 축제의 핵심은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공동체의 기억 속에 다시 불러오는 행위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외부인의 가벼운 참여가 불편함을 낳기도 한다. 이 날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감정의 공유가 전제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르완다의 제노사이드 추모 주간(Kwibuka)도 마찬가지다. 이 기간 동안 열리는 행사는 축제의 형식을 띠지만, 분위기는 극도로 엄숙하다. 음악이 없는 집회, 검은 옷, 침묵 행진. 사람들은 함께 모이되, 감정을 과시하지 않는다. 여기서 축제는 즐거움이 아니라 집단적 회복의 장치다. 말하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는 유지된다.
축제라는 형식이 슬픔을 견디게 하는 이유
왜 사람들은 슬픔을 굳이 축제라는 이름 아래 모아두는 걸까. 개인의 애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한 사람의 기억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반복되는 행사, 정해진 날짜, 같은 동선. 이 구조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게 만든다.
터키의 차나칼레 전투 추모 행사에서는 승리나 패배보다 희생이 강조된다. 군사 퍼레이드 대신 추모 행진이 중심이 되고, 연설은 짧고 절제되어 있다. 이 행사는 국가적 기억을 재확인하는 자리지만, 감정의 과잉은 경계된다. 너무 크게 기뻐하지도, 너무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 중간의 균형이 축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처럼 웃지 않는 축제들은 슬픔을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관리하고, 나누고, 다음 세대로 넘긴다. 축제의 반복은 기억의 지속을 보장한다. 한 번의 추모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지만, 매년 같은 날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행사는 기억을 사회의 일부로 만든다.
웃음이 없을 때, 축제는 더 오래 남는다
이 축제들에는 화려한 사진이 남지 않는다. SNS에 올릴 만한 장면도 많지 않다. 그러나 참여한 사람들은 오래 기억한다. 그날의 공기, 침묵의 길이, 옆 사람의 숨소리까지. 웃음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감각들이 또렷해진다.
축제는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은 현대적인 발상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공동체에게 축제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담는 그릇이었다. 웃지 않는 축제들은 말한다. 어떤 기억은 환호로 기릴 수 없고, 어떤 상처는 침묵으로만 다룰 수 있다고.
그래서 이 축제들은 지금도 이어진다. 아무도 웃지 않지만, 모두가 필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날의 침묵은 마음 어딘가에 남아, 공동체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조용히 알려준다. 그리고 그 역할을 다하는 한, 이 축제들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웃음 없이도, 아니 웃음이 없기 때문에.